리처드 매드슨 ‘나는 전설이다'(스포일러 있습니다.)제목이 “나는 전설이다”인데, 책이야말로 이 전설. 윌·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는 예전 봤어, 당연. 영화도 재미 있었고 잘 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서 찾아본 이 원작 소설은 재미 있다는 표현조차 미안 수작. 게다가 당연히 책도 영화 같은 설정과 줄거릴 것이라고 믿고 읽어서 이 책을 읽을 시간이 더 흥미로웠다. 책의 주인공 네빌은 영화의 주인공인 윌·스미스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고독하고 매운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책과 영화의 차이 ■ 책에 그려진 좀비들은 일반적인 좀비 영화에서 정형화되어 나타났다(영화”나는 전설이다”도 마찬가지)좀비들의 형상과는 크게 다르다. 좀비 특유의 피가 말라서 뒤틀린 기분 나쁨에 대해서는 여기에서도 묘사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서술은 그들이 여전히 외형적으로는 인간이라고 우겨도 무방하다 정도의 외형은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썩어빠지거나 몸이 부서져서 좀비 이외의 대부분의 제대로 된 좀비는 육안에서 인간과 식별이 어려울 정도다. 이 점은 이 소설의 결말과 심대한 관련이 있다.■ 책의 주인공 네빌은 철저히 혼자다. 세 파트의 종으로 개의 섬과 함께 걸으며, 서로 의지하고 지키는 영화의 주인공과는 전혀 다르다. 너무 외롭고 고독한 때문에 책 속의 네빌은 좀비 여성들을 보고성욕을 느끼거나 그런 자신의 존재가 저주 받고 자해하거나 알코올에 의존하기도 한다. 책에서도 잠시 개가 등장하는데, 그 방랑의 개는 네빌의 외로움을 달래는 파트너라기보다는 그의 고독을 더욱 절실하게 표현하는 매개체로서 나타난다. 살아 있는 생명체와는 처음이었다 떠돌이 개를 만나고 그에게 완전히 잡혔다 네빌. 네빌은 그 개를 길들이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긴 시간 무참하게 노력하지만 간신히 마음을 내준 개가 그의 가슴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은 이 지옥에서 네빌이 철저히 혼자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가장 다른 점은 역시 결말 부분이다. 영화의 결말은 결국 윌·스미스를 통해서 아직 남아 있는 휴머니티를 역설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윌·스미스는 끝까지 우연히 만난 다른 인간들 모녀를 돕고 본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만든 백신을 전달함으로써 인류를 구하다 장렬히 전사한다.(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감독판의 결말도 인간 구원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은 마찬가지다.)그러나 소설 속의 네빌의 마지막은 그와는 다르다. 네빌은 좀비와 인간의 양자의 성향을 모두 가진 새로운 종족을 맞이하게 되어 본인이 생존하고 있는 마지막 인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뇌하던 네빌은 드디어 마지막 단 한 사람으로서 자살을 선택할 “이제 나는 전설이다”라는 선언이다. 소설”나는 전설이다”의 힘은 우수한 묘사력이다. 리처드· 마드센 경은 디스토피아적 가까운 미래, 즉 세계가 폐허가 되었고, 생존자는 없는 좀비만 싱숭생숭 하면서 한때 이웃 주민이었던 자들이 주인공의 피를 마시러 매일 밤 집에 모여서 창문과 벽을 두드리고 끓임 없이 고함을 지르는 네빌의 현실을 섬뜩한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한다. 또 네빌이 살고 있는 집의 모습도 충분히 독자의 머릿속에 새겨질 정도로 자세히 서술된다. 독자들은 좀비가 나타나지 않는 낮 시간 동안 그가 마늘 목걸이나 발전기의 수리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통조림이 가득한 방에 들어설 때마다 어떤 기분인지, 어떤 마음으로 망가진 창문과 벽을 보수하는지 등을 함께 고난을 경험 하는 동지 같은 마음으로 체험하게 된다.그러나 역시 작가의 묘사력이 가장 빛나는 부분은 인간 로버트·네빌의 심리 표현이다. 책 속의 네빌은 영화로 윌·스미스가 연기한 것처럼 고독하지만 거칠고 쿨하고 강하고 멋진 남자가 아니다. 네빌은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나오기를 반복하고 잘 죽은 아내와 딸을 생각하며 이런 상황에서도 성욕에서 자유롭지 못한 스스로를 저주 인간이다. 방랑 개를 품고 그 체온에 감격하는 끝없는 사랑을 느끼면서도 정작 나타난 인간(듯이 보였다)여성에게는 경계심을 늦출 수 없다. 이들 모두 네빌이다. 이 네빌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과정을 함께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황당한 SF소설을 읽으며 마음에서 전율할 고독하게 된다는 것이 이 소설”나는 전설이다”이 갖는 가장 미덕이다.[][][][][][]